작가: 심정훈

종교, 예술, 사랑.

 

최근에, 오며 가며 생각하게 하는 의미들이다.

종교...

난 종교적이고, 율법적인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았으나,

내가 가장 싷어하는 것이 밖의 형식과 율법, 율법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종교였다.

난 한때, 마음으로 영접한 그리스도를 종교가 아닌, 인격 자체로 인정했었고, 많은 시간을

열심(?)으로 보냈다.

성경에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했으니, 10년이면 ....

종교생활로 따지면 아주 어렷을때부터이므로,

나의 대부분은

교회생활이었다고해도 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을때에, 나에게 큰 위로와 행복이 있었다.

나의 지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나에게 큰위로와 안식, 감사, 변화, 행복들을 주었었기때문이다.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럼 다시 돌아가면, 그러한 감사가 있을까?

아마 있을게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지 않다.

 

예술...

난 내가 가진 재능을 묻어두고, 피하고 살았다. 그림이 아니고도 충분히 평온했기때문이다.

그림을 다시 시작한 건 마음이 무지 아파서였다.

쏟을 곳이 필요했고, 마침 내가 가장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이었기때문이다.

그림에 몰두하고, 나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출하므로, 아픈 마음이 달래지는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에너지는 사랑에 의해서도 분출되지만, 분노나, 아픔같은 부정적인 것도, 사람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 같다.

내가 그림을 다시 시작한 힘은 분노가 에너지로 바뀌었기때문이다.

이제는 사랑의 힘이 원동력이 되어 그림을 하고싶다.

 

사랑...

한계가 있고, 지속적이기 힘들고, 변하기 쉬운 인간적인 사랑도

사람의 아픔을 충분히 치료해 주는 위력을 가진 것 같다.

만약, 그러한 일은 없겠지만, 인성으로 오신예수와 성령으로 변화 된 예수님 중에 누구를 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인성으로 오신 그분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쵸코렛과 바벳트의 만찬이라는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곳에선,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종교적인 분위기가 결코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거나,

조화롭게 하지 못했으나, 한여자의 음식과 함께한 극히 인간적인 사랑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평화롭게 만들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종교, 예술.

이 두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는 어려운 것 같다.

종교는 자아를 버리라고 하지만, 예술은 철저하게 자신이어야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버릴 것이 없는 자아가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노라고 말한 사도 바울은

버릴것이 있었던 사람이었기때문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종교와 사랑.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은 바람과공기 같아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뭇가지의 흔들림 같은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것자체로는 추상적이다.

그와마찬가지로 인간적인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도 느낄수있다.

그것이 종교에대한 나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뭇가지가 없다고, 바람이 없다곤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랑의 상실감을 맛보았을때, 그리스도의 사랑도 느낄수없다.

만약, 그리스도가 인성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그분의 흔적과 그분의 영성도

느낄 수 없는 것과 같다. 적어도 난 그랬고, 그렇다.

 

아직은 이 세가지 사이에서 난 힘들어 한다.

내가 요즘 떠올리는 종교와 예술, 사랑. (그것이 혹 인간적인 사랑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에는 뭔가가 다른 것이 있다.

사람을 치유하는 기능을 가지는 것 같다.

 

좀 더 세월을 보내야 할 것 같다.